[몹시] 그들은 왜 여성에게 돈을 빌려줄까?

[활동가세미나 '몹시' 후기]

그들은 왜 여성에게 돈을 빌려줄까?

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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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은행에 방문했다. 3년 전 4%대 금리로 들었던 적금 만기 해지를 위해서였다. 소액으로 겨우겨우 3년을 유지하며 채웠지만 요즘 금리를 떠올리니 좀 더 일찍, 많은 금액을 저축 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괜히 속이 쓰렸다. 번호표를 뽑고 30분 이상 기다려 마주한 은행 창구 직원은 ‘투자’니 ‘공격상품’이니 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용어들을 섞어가며 아주 빠른 속도로 내게 ISA통장개설을 권했다. 종종 1%대 예금 금리에 대해 하소연 섞인 목소리로 안타까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왜 이렇게 금리가 낮은 거예요?”라고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던진 내 물음에, “다 대출 때문에 그렇죠 뭐, 대출업무가 많아요.”라며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적금 들러 왔다가 대출을 받는 고객도 많단다. 하지만 이것도 초저금리 시대에 ‘빚테크’라는 신종 자산관리 흐름에 발맞춰 제1은행권 대출이 가능한 소위 돈 좀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저축으로 돈을 모은다는 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언론은 틈틈이 가계부채 심각성을 보도하며 서민경제를 크게 우려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지난 4월 하향 조정된 법정 최고이자율(기존 34.9%에서 27.9%로 인하)에 대해 "대부업계의 대출심사가 까다로워지면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 업체로 내몰릴 수 있다"라는 금융계,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연일 보도했다. 그간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선심 쓰듯 상환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자본을 축적한 거대 자본가들의 무책임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최고이자율 인하를 서민경제에 타격을 주는 부작용이라고 지식인의 언어로 포장하고 선전하는 모습에서 ‘고양이 쥐 생각한다’는 격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리대금과 추심에 대한 적극적 규제와 단속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채무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전무한 현실에서 소득이 불안한 개인에게 ‘대출’은 권리이자 복지인양 그 무엇보다 폭발적, 전략적로 접근을 확대해왔다. 내 앞가림은 내가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을 신조 삼은 ‘도덕적이고 합리적 주체’인 개인은 미래소득을 담보로 ‘대출’이라는 하나의 선택지 안에서 주거‧의료‧교육‧복지‧생계 문제를 감당하며 현재를 저당 잡힌 채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채경제 말단엔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저임금 산업으로 내몰리는 여성이 있다.
 
 

이룸은 ‘대추: 대출은 추심!’사업의 밑 작업으로 지난 3월부터 1980년대 금융자본의 세력 확대와 신용의 증가로 이전 시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게 된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몹시]에서는 <가난을 팝니다>(라미아 카림, 오월의 봄, 2015)를 읽고 ‘금융의 세계화’가 진행되던 시기 최빈국 방글라데시를 틈새시장으로 발견한 금융의 검은 속내와 전략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방글라데시는 서구 원조기구에 의존하며 필수서비스를 NGO에 아웃소싱한 탈식민지국가이자, 전체 인구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1일 1달러 소득 미만인 극빈자가 전체 인구의 41.3%를 차지하는 최빈국이다. 그런 땅에서 그라민은행은 어떻게 ‘소액 대출’로 세계적인 "빈곤 퇴치와 젠더 전략을 위한 주요 원조정책" 모델로 각광받으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걸까.
 

그라민은행은 누구보다도 ‘빈민여성’을 가치창출의 주요한 고객으로 삼았다. “소외계층 삶의 개선에 헌신한다”라는 윤리적 주체이자 농촌사회에 자원을 공급하는 권력을 가진 NGO로서 그라민은행은 농촌여성에 대한 기존의 관습과 통제를 자신들의 손실은 막는 위험관리로 제도화했다. 결과적으로 빈민여성과 금융서비스라는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여성이 금융자본에게 그 무엇보다 ‘선’하고 ‘합법적’으로 이윤을 내기에 탁월한 시장임을 증명해보였다.
 

그라민은행을 비롯해 마이크로파이낸스 정책, 간단히 말해 ‘무담보’ ‘무보증’을 내세운 소액대출 서비스를 하는 이들 NGO는, 이 같은 대출이 “여성역량강화와 가난을 구제하고 공동체를 개발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은 상환능력을 묻지 않고 가족 생계를 지탱할 만한 토지를 살 정도의 금액보다 훨씬 적은 액수만을 가계경제에 결정권이 없는 빈민여성에게 무작정 대출해주었다.

 
저자가 연구한 그 실상을 좀 더 살펴보면 이렇다. 여성들은 대출자그룹을 형성해야 돈을 빌릴 수 있었는데, NGO는 이들 그룹을 통해 일일이 손대지 않고도 대출금 회수에 상호 압력을 강요해 대출자를 통제할 수 있었다. 이른바 연대보증이다. 뿐만 아니라, NGO는 정해진 이자에서 대출 상품의 종류와 기관에 따라 다양한 추가 비용(고정이자+그룹회비+의무저축+가입비+통장발행비+취소수수로+의무적으로 상품을 사게 하는 끼워 팔기 등)을 통해 발생 가능한 연체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두었고 저축을 해야 대출자격이 생기는 규칙은 상환금을 연체할 시 담보역할을 했다. 특히 이들 NGO의 ‘공개적 망신주기’, ‘집부수기’ 심지어 감금하거나 대출자를 고발하는 방식의 강압적인 추심은 농촌 사회의 명예와 수치관념 하에 지배받는 취약한 여성의 지위를 이용하여 채무를 변제하도록 스스로 규율하게 했다. 즉, 여성은 대출로 가족과 공동체 차원 모두에서 새로운 형태의 종속과 억압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앞서 나열한 NGO대출은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여성전용대출’의 고객 선정과, 마케팅, 위험관리 전략에서 매우 유사한 점을 보였다. 먼 나라 이웃나라에서도 여성은 금융이 이윤을 창출하기에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에서 많은 비율로 과다채무와 고리대, 강압적인 추심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을 만나는 우리가 성매매를 이야기하면서 금융, 복지, 노동, 기본 소득을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금융자본의 질주는 성별 성차별 제도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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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야”
“네가 필요해서 빌린 거잖아”
“네가 선택했기 때문에 감수해야 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은 담합과 뒷거래를 통해 몸을 불리는 자본권력을 은폐하며 우리들의 경제관념에 교묘하게 파고들어 행동을 규율한 지 오래다. 그사이 법은 채권자들에게 추심의 결정타로 기능하고 있고 비현실적이고 차별적인 금융자본의 설계에 말미암은 위기와 과제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어 발화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나는 고금리, 강압적인 추심, 폭력과 같은 행위를 합법/불법이라는 틀에서 겨우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자발’, ‘선택’, ‘필요’라는 언어 속엔 ‘누구에’의해 ‘특별히 누구의 필요’가 만들어 지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자들이 누구인지는 없다. 금융자본은 이윤에 따라 움직인다. 개인의 부주의를 탓하고 서로가 서로를 단속하게 하는 질문과 논의 속에서 이 움직임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왜, 빈곤한 여성들이 갚을 능력도 없이 돈을 빌릴까?”
“왜, 그렇게 많은 빚을 지고도 또 돈을 빌릴까?”라는 질문에 다시 질문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왜 여성에게 돈을 빌려줄까?”

 
그리고 이 같은 질문이 필요한 현실에는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비정규직 저임금 여성노동의 대안으로 성매매가 존재하는 문제가 함께 있다.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집을 못 사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성매매를 한다는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자본’이었을까?”
“이들이 말하는 어려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그 어려움이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무엇일까?”
“빚이 늘어난 이들이 ‘돌려막기’,‘사채’, ‘카드깡’ 등의 동일한 경로를 경험하는 건 왜일까?”
“돈을 빌리지 않고도,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생존권, 노동권이 보장되는 현실에 대해 같이 목소리를 낼 수는 없을까?”
여러가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이제 “왜?”라는 질문은 돈을 빌릴 수 있는 능력을 ‘신용’이자 ‘권리’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신용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력자들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복지와 자활에 필요한 자원을 모으고 배분하는 ‘능력’으로 우리에게 심사받아야 할 책임으로서 기능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내담자가 일수업자로부터 반복적인 추심협박에 시달려 상담소를 방문했다. 상환방법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돈을 빌린 후 연대보증인의 카드를 일수업자에게 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준 후 본인과 연대보증인이 해당 계좌로 매일 돈을 입금한다.”고 말했다. 법적 대응이 필요하거나 다툼이 생겼을 때 돈을 갚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채무자의 책임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이 불공정한 관행은 지금도 우리의 상식 밖에서 새로운 상품들로 둔갑에 둔갑을 거듭하고 있다.